Mind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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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삶의 사용설명서를 뒤늦게 받아들였다.
ADHD와 APD를 진단 받은 개발자의 이야기
2025-04-13 22:51
나는 멀쩡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 때 이상하게도 안도했다. 평생을 “왜 이럴까?”라는 질문 속에 살았으니까. 정리되지 않는 책상, 자꾸 놓치는 약속, 자주 되묻는 대화, 산만함과 과도한 몰입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삶. 나만 그런 줄 알았고, 그건 단순한 성격 문제라고 생각했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더 철저해져야 한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모든 것의 이유를 들었다. 진단명 하나에 너무 많은 퍼즐이 맞춰지는 경험. 이 글은 그 경험의 기록이다. 제가 ADHD라뇨. APD는 또 뭔데요. 1. 처음으로 이상하다고 느낀 날 - ADHD를 의심하게 된 계기 🛤️ 그날도 기차를 놓쳤다 2024년 여름, 다이빙 동호회와 울릉도 여행을 가던 날이었다. 하필 그 날은 나의 팀 마지막 출근일이기도했다. 치워도, 치워도, 치워치지않는 자리 정리에 정신이 없었고, 결국 기차 시간이 촉박해져 3년간 함께한 팀원들에게 인사도 못 했으며, 끝끝내 유일한 포항행 SRT마저 놓쳐버렸다. 대전까지 이동해 겨우 KTX를 타긴 했지만, ‘복합열차’ 개념을 몰라서 호남으로 갈 뻔했고, 그 와중에 성심당 빵까지 놓고 내렸다. 한번에 갈 수 있지만 굳이 굳이 택시, SRT, KTX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서 도착한 포항역 “소연님 완전 ADHD인데” - 장난처럼 던진 누구가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내가 대화 중 갑자기 다른 말을 한다거나, 방금 했던 말을 꼭 다시 반복하게끔 되묻는단다. 특히 친하게 지내던 OO님이 가장 흥분하며 말했다. “어쩐지 이상하다 생각했어!” - 내가 ADHD 환자임이 기정사실 마냥 확실시 되고 있었다. 😅 사실 검사도 몇개월동안 미루고 미루다 OO님이 하도 보채서 갔다. 🔄 놓치고 잊고 잃어버리는 나의 루틴 나도 안다. 매번 놓치고, 기억하지 못하고, 정리가 잘 안 되던 수많은 순간들. 난 첫인상으로 철두철미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내 친구들은 내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안다. 난 자주 지각하며, 자주 잊어버리고, 또 자주 잃어버린다. 길치가 아닌데도 잘못 된 길에 들고, 비행기는 3번쯤 놓쳤으며, 기차를 놓친 횟수는 셀 수도 없다. 물을 따를 땐 항상 흘리며, 이미 산 물건을 몇 번이고 또 사고,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못한다. 무엇이든 간에 적어놓지 않으면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도 기억하지 못한다. 이건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내 일상 자체의 반복 구조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 모든 게 당연해졌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라는 체념 같은 것. 여러분들은 사가정에서 만나기로해놓고 삼각지에 간 말도 안 되는 경험이 있는가? 난 있다. 🕳 그래서 나는 더 꼼꼼했다 많은 것을 놓치기 때문에 나는 업무 중엔 최대한 많은 것을 기록하고 메모하며, 사소한 것까지 검토한다. 그 모습 덕택에 날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꼼꼼하다는 착각을 한다. 물론 일상생활 중에는 애로사항이 많지만 업무 중에는 오히려 ‘꼼꼼하다’는 피드백까지 받으니, 내 단점은 보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철두철미해 보이는 나의 첫인상 (이 순간에도 뭔갈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렸음) 하지만 그날 울릉도에서 들었던 한 마디 이후,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게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진짜 문제일 수도 있는 걸까?’ 내가 그동안 ‘개성’이라며 넘겨온 수많은 행동들이 사실은 누군가에겐 ‘증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렇게, 나는 내 삶을 조금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건 사소한 계기였지만,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의심이었고, 동시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러니까 제 인생이 바나나 껍질 40배라고요? 2. 검사 과정 - ADHD는 어떻게 진단받을까? 🩺 문진 & 상담 의사 선생님의 대면 문진/상담으로는 너무나도 가볍게(?) ‘전형적인 ADHD’라는 소견을 받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 본격적인 검사는 이 때부터 시작이다. 무려 두시간 가까이 머리에 뭘 쓰고 뇌파 검사, IQ 테스트, 집중력 테스트를 봤다. ADHD 검사가 이렇게 과학적이고 체계적일 줄 몰랐다. 정신과는 내 생각보다 하이테크했다(!) '삐빅- ADHD입니다.'하고 끝날 줄 알았나요? 저도요 🧠 뇌파검사 (EEG, Electroencephalography) ADHD의 뇌의 전기적 활동 패턴은 일반인과 다르기 때문에, ADHD 특유의 신경생리학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한다. ADHD 환자들은 Theta 파와 Beta 파의 비율을 의미하는 TBR이 일반적으로 높은편인데, 이는 멍함과 집중력 저하를 의미하며, 뇌의 각성 수준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걸 머리에 쓰고 뇌파를 검사한다. 내 이런 모습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고싶은데, 왜인지 병원 로비에서 검사시킴.. 그런데 나는 이 뇌파검사에서 꽤 독특하게 나왔다. 여기에는 두가지에 소견이 있다. 첫번째는 내가 과잉형 ADHD라는 것. 일단 ADHD 판별에 가장 중요한 지표인 TBR 수치가 하위 5%가 나왔다. 이는 ADHD 양상과는 반대되는 패턴으로, 되려 내가 너무 지나친 각성 상태라고 했다. 특히 나는 고주파대역(Beta, High Beta, Gamma)가 다소 비정상적으로 활성화 되어있었는데, 이 또한 과잉 각성 상태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나의 이런 극단적인 양상이 감각 자극 처리의 불균형 때문이라는 것. 예컨대 청각 자극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떨어지기에, 이를 시각적 집중력으로 과보완하면서 전체적인 뇌파의 방향성이 왜곡된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뇌가 부족한 자원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영역을 과도하게 동원하게 되면서, 각종 수치들이 비정상적으로 하위 5% 혹은 상위 5%에 치중된 것이다. 이렇게까지 극단적일 필요 없잖아. 🧮 IQ 테스트 (Raven’s SPM, 유추능력 중심) 집중력보단 지능의 문제일 수 있으므로 지능 검사 혹은 IQ 테스트를 같이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이 검사에선 최고 수치인 ‘140 이상’이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이걸 특히 주목하셨는데, 학창 시절이나 사회생활에선 잘 해왔지만 생활 속 반복되는 실수가 계속되었다는 점 자체가 고기능 ADHD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양상이라고 했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못 해도 벼락치기로 충분히 높은 성적을 냈고,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가지는데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지능이 높을 수록 발견이 늦게 된다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인사이트도 있었는데, 그래서 아마 나의 경우에도 성인이 되어서 ADHD가 생겼다기보다는, 어린 시절에 발견되었어야할 ADHD가 높은 지능에 가려져 뒤늦게 발견 된 케이스일 것이라고 의견을 주셨다. IQ 검사라는걸 말 안 해주셔서, ADHD 판별 검사인줄로만 알고 너무 어려워서 당황했다. 🎯 집중력 테스트 (CAT) ADHD를 판별하는 가장 중요한 테스트. 반응 속도나 오류율, 일관성 등을 체크하며 지속적 주의 집중 능력, 실수 빈도, 반응 일관성 등을 검증한다. 계속해서 변화되는 규칙을 찾아낸다거나, 특정 숫자가 나올 때마다 화면을 클릭하거나, 특정 소리가 나오면 화면을 클릭한다. 3이 들릴 때마다 클릭하기 - 사실 하면서도 내가 너무 못 하는게 보여서 무력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여기서도 뇌파검사와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결과가 나왔는데, 시각 집중력(Visual Span)에서는 상위 1%, 청각 집중력(Auditory CPT)에서는 하위 1%였다. 이 극단적인 양상을 통해 나는 단순히 집중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각 처리 능력의 불균형이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각 자극에 대한 정보 처리가 지연되거나 누락되기 때문에, 나는 시각 정보에 더욱 의존하게 되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시각 자극 관련 뇌 영역이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동시에 청각 자극에 대해선 점점 더 무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그래도 꽤 재밌었던 변화하는 규칙 찾는 카드 게임 3. 검사 결과 - 진단명 하나에 맞춰진 퍼즐들 💥 [ADHD] 나는 멈추지 못 하는 ‘과잉 인간’이다. 나는 ADHD하면 ‘산만한 아이’정도를 떠올렸다. 그래서 내 얘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잘 깨어 있고, 오히려 과도하게 집중하고, 멈추지 못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집중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나와 맞지 않다고 여겨왔다. 히지만 나의 경우엔 ‘하이퍼포커스(hyper-focus)’와 ‘과잉계획’, ‘기록 강박’, ‘감정 반응의 민감성’ 같은 특성이 더 두드러졌다고 했다. 정신없이 일을 몰아서 처리하고, 하루 12시간을 넘게 일에 몰두하고, 머릿속에 열 개의 일을 동시에 떠올리고, 쉬고 있을 때도 조용히 쉴 수 없었다. 실제로 나는 주어진 업무가 많을수록 오히려 성과가 좋았다. 동시에 프로젝트를 세네 개 진행할 땐 집중력이 올라갔고, 일이 줄어들면 무기력해지며 주의가 흐트러졌다. 이건 ADHD 환자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과잉동기-탈진 루틴’이라고 한다. 몰아치듯 집중했다가 갑자기 방전되는 구조다. 그러니까 나는 가만히 못 있는 사람이 아니라,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저는 비빔, 아니 과잉 인간입니다. 🎧 [APD] 소리는 들리는데, 뇌에는 닿지 않는다 사실 ADHD 진단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청각 처리 능력에 대한 결과였다. 뇌파 검사와 집중력 테스트 모두 청각 자극 반응에서 유난히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하위 1%의 청각 정보 처리 능력. 뇌파 지수로도 청각 정보 전달 속도가 기준치의 절반 수준이었고, 그 마저도 인지력이 35%밖에 안 되었다. 내가 겪는 청각 관련 특징들 - 소음이 섞이면 대화 내용이 사라진다 - 말을 ‘다시’ 들어야 한다 - 가끔은 말은 들리는데, 의미가 뇌에 닿지 않는다 - 자막이 없으면 영화를 보지 못 한다. 실제로 시끄러운 공간에선 대화 내용을 거의 놓친다. 누군가 말을 하면, 이해하기까지 몇 초가 더 걸린다. 분명히 방금 들은 말인데도 ‘그게 무슨 말이지?’ 하며 머릿속을 맴돌다가 결국 다시 묻게 된다. 특히 말 전체의 문맥을 한 번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보가 왜곡되거나 통째로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그동안 이걸 산만함이나 건망증으로 착각해왔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난 ‘듣는 것’보다 ‘보는 것’에 의존하게 됐다. 예컨대 자막 없는 영화는 사실상 못 보기 때문에 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건 나의 ‘성격’이 아니라 뇌의 ‘처리 구조’ 문제였다. 이것이 바로 청각 처리 장애(APD, Auditory Processing Disorder)였다. 청력이 나쁜 것도, 귀가 아픈 것도 아니다. 소리는 들리지만, 그 안의 ‘정보’가 뇌에 닿지 않는 것. 그냥 매일이 이런 상황 🎯 [감각불균형] 무지성 몰빵 스탯의 기행 빌드 나는 청각 정보 처리능력에서 하위 1%가 나왔지만, 시각 정보 처리 능력에서는 상위 1%가 나왔다. 한쪽 감각의 결핍을, 다른 감각이 ‘과하게’ 보완하고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 나는 청각 정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듣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누가 방금 한 말을 다시 물어보게 되는 이유, 대화 중 자주 주제를 놓치는 이유는 다 여기에 있었다. 반면, 시각 자극에는 비정상적으로 민감하다. 뭔가를 보면 바로 파악하고, 기억에 잘 남는다. 숫자나 글자의 배열을 시각적으로 기억하는 능력은 비정상적으로(?) 높다. 실제로 나는 머릿속에 사진으로 저장하는 것처럼 특정한 것들을 굉장히 잘 기억한다. 이를테면 카드뒤집기 같은 거. 누가 스탯을 이렇게 몰빵으로 찍어요; 4. 되돌아보며 - 나는 나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 결핍을 덮은 능력 - 단점 덕에 발전한 장점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매일 아침 할 일을 적었고, 회의 중에도 요점을 메모했다. 사람들은 날 보고 ‘정리 잘한다’, ‘디테일하다’고 했지만, 나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잊어버리는 게 너무 많아서 그랬다. 메모, 기록, 정리, 문서화, 캘린더 관리 — 그러니까 나의 방식이라기보단 생존 그 자체였다. 그 시스템 덕분에 ‘꼼꼼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었고, 나도 사실은 그렇게 믿어왔다. 17살부터 지금까지 매일 아침 해야할 일을 적는 것이 10년이 넘도록 습관이 되었다. 🎭 결핍을 가린 가면 - 고지능이라는 외피 수업 내용이 전혀 뇌에 박히지 않고 있었지만, 성적이 좋으면 아무도 그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 IQ가 높거나 성과가 뛰어난 사람일수록, 이런 문제는 더 늦게 드러난다. 주변 사람들은 ‘잘하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하고, 본인도 ‘내가 문제인 줄 몰라서’ 방치하게 된다. 능력이 아니라, 결핍을 몰라서 생기는 문제. 나도 그랬다. 나 뿐 아니라, 성인 ADHD를 진단받은 대부분의 사람이 지능 때문에 어릴 적에 발견을 못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좀 덜 떨어져도 티가 안 날 수 있지 🧱 결핍을 정체화한 오해 -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착각 나는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늘 피곤하고, 대화 중 자주 놓치고, 정리와 메모에 집착하는 것도 그냥 내 성격이라 믿었다. 예민하고 집중에 기복이 있는 건 그냥 “나는 그런 타입”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원래의 나’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나’였다는 걸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그건 내가 선택한 성격이 아니라, 적응을 위한 전략이었다. "제가 원래 말귀를 좀 못 알아먹어서요" 🏆 결핍을 감춘 성과 - 버티는 사람이 유능해 보이는 사회 우리는 늘 ‘버텨야 했다’. 그걸 ‘능력’이라 착각했고, 나 또한 남들보다 노력해야 가능한 상태를 ‘내 기본값’이라 믿었다. 모두가 각기의 힘든 상황 속에서도 노력을 하고 살아가는거라 믿었다. 성과가 결핍을 감췄고, 그 결핍은 너무 오랫동안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이제 와서야 그 모든 ‘성과’는 나를 괴롭히던 결핍 위에 세워진 허약한 탑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린 다들 버티라고 배워오지 않았는가 5. 진단 그 이후 - 달라진 것들 🔊 세상이 조용해지고,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약을 먹은 첫날, 정말 기이한 경험을 했다. 대화 중 상대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일 줄 몰랐다. 이전에는 매번 대화가 ‘들리는 듯 말듯’ 흘러가곤 했는데, 이제는 단어가 명확히 박히고, ‘생각의 소리’와 ‘외부의 소리’가 서로 뒤섞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기분에 펑펑 울었다. 이렇게 잘 들리는 거였다니, 이제까지 내가 정말 못 듣고 있었다니,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나의 불편함을 참아주고 있었다니, 그런 복잡한 마음 속에 정말이지 눈물만 나왔다. 약은 만능이 아니다. 잠시동안 집중이 좋아지는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그 몇 시간 동안의 평온함은, 내가 평생 몰랐던 세계였다. ‘내게 맞는 리듬을 찾고 싶다’ 찾기 위해, 약은 그 리듬을 찾는 ‘보청기’ 같은 역할인 것이다. "이렇게 잘 들린다고?" 다른 사람들의 말이 모두 들리기 시작했다. 📖 진단은 낙인이 아니라, 나에 대한 설명서 진단을 받았다는 건 어떤 면에선 나를 규정짓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해방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늘 “왜 나는 이럴까?”라는 질문에 붙잡혀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내가 부족해서”라고 답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유가 있다. 구조가 있다. 설명이 있다. 나는 그냥 그런 구조의 뇌를 가진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 사실은 나를 약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다정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나를 다그치지 않는다. 못했다는 이유로, 실수했다는 이유로, 끝까지 못 갔다는 이유로 나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나는 나를 이해하고 있고, 그 이해는 삶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 진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제는 과거의 내가 이해된다. 무리하게 몰아붙이고,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책으로 무너졌던 그 많은 순간들이. 나는 부족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구조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아는 것만으로도 삶은 훨씬 다정해질 수 있다. 깔끔하고 명확한 제품 설명서 🤝 나의 부족함은 타인을 이해하는 문이 되었다 진단 이후, 내가 제일 크게 바뀐 건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다. 예전엔 답답하게 느껴졌던 사람들—매번 회의만 요청하고 슬랙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던 개발자, 문서를 읽으면 되는데 꼭 설명해달라던 누군가—그들을 이제는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생각한다. ‘혹시 그 사람도 나처럼 정보처리에 있어 어떤 감각의 편향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나의 감각구조를 알게 된 이후, 타인의 행동도 더는 ‘이상함’이 아니라 ‘다름’으로 보인다. 진단은 나만을 위한 것도, 나만 바꾸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태도도 함께 바꿨다. 타인을 위한 포용력 0.1% 증가 6. 글을 정리하며 - 나는 나를 어떻게 대하게 되었는가? 💡 자책하며 살아오던 나의 진짜 사용 설명서 나는 항상 대화를 놓쳤고, 사람들은 내가 집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내 뇌가 듣는 걸 잘 못하는 구조였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모른 채, 나는 정말 너무 오래 멀쩡한 척을 하며 살아왔다. 나는 게으르다고 생각했고, 의지가 약하다고 자책했고, 왜 자꾸 마무리를 못 하냐며 나를 고장난 물건처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망가진 게 아니라, 설명서를 몰랐던 거다. 진단은 낙인이 아니라, 나에 대한 설명서다. 그걸 알게 된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설명서가 있다는 건, 이제 나를 고치려 애쓰는 대신, 나를 이해하고 다룰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그건 꽤 괜찮은 일이다. 지금도 여전히 지각하고, 산만하고, 언젠간 이미 산 물건을 또 사는 날도 다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그 답은, 나를 다정하게 대하는 첫걸음이 되었다. 예전에는 실수할 때마다 나를 다그쳤지만, 지금은 포용할 수 있다. 그 작은 인정 하나가 일상을 다르게 만든다. 나는 나를 탓하는 대신, 관리할 수 있는 나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건 ‘실패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실수해도 괜찮은 나’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건, 설명서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태도다. 나는 짐승 합격 🍀 럭키비키~! 💬 그리고, 자책하고 있는 또 다른 당신에게 혹시 당신도 자꾸 산만하다는 말을 듣고, 이미 한 말을 또 묻는다고 핀잔을 듣고, 머릿속이 너무 산란해서 메모를 놓치고,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아 조급해지고 있다면. 그게 꼭 당신의 잘못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연 나이 서른 살이 되어서야 내 삶의 사용설명서를 받았다. 검사를 받는다고 갑자기 지각을 안 하게된다거나 안 하던 청소를 하는 등 인생이 뒤집히는 건 아니지만, 설명이 생긴다는 건 생각보다 큰 변화였다. 그 설명은 나를 바꿨고, 나의 관계를 바꿨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바꿨다. 나는 진단 이후 처음으로 나를 이해했고, 덕분에 타인을 덜 원망하게 되었다. 나도 몰랐던 나의 결핍을 알게 되자, 타인의 이상한 행동들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혹시 당신도 ‘나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이래서 나는 안 돼’라는 말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면, 오래된 자책 속에 살아가고 있다면, 한 번쯤 사용설명서를 받아보길 바란다. 그건 나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당신도 나처럼, 스스로를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하게 되길 바란다. 나 또한 지금이라도 받아들였기에, 이제 나는 그 설명서대로 살아보려 한다. 그거 아세요 여러분? ADHD는 사실 All Day Happy Day 증후군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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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차 개발자의 번아웃 - 과연 내가 번아웃이 올 자격이 있을까?
개발자의 3, 5, 7년 슬럼프 이야기
2021-12-30 20:12
난 요즘 연차를 일부러 깎아 말하는 경향이 있지만, 굳이 따지면 8년차다. 최근에 번아웃과 8개월 정도를 씨름하다 이제 다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인데, 회고 겸 흑역사 셀프생성 겸 나의 번아웃 전투기를 작성하기로 했다. 올 초 정도인 7년차 쯤 찾아온 번아웃(혹은 슬럼프)의 이야기다. 난 ㄱㅏ끔... 슬럼프가 찾아온다... 주니어때는 직장인의 3.5.7 슬럼프를 우스워했다. 직장인 3/5/7년차마다 슬럼프에 빠진다는 말이 굉장히 우습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개발이 항상 내 천직이라고 생각했고 (직업만족도 150%) 어떤 때에는 일찍 퇴근하는 것보다 야근하는 게 더 즐거웠던 적이 많았으니, 언젠간 성장 상승곡선이 완만해질 때는 오더라도 하락할 때가 올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가장 타격을 받지 않는 말이 (혹은 오히려 화나는 말이) ‘소연님 그렇게 한다고 알아주지 않아요’라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퇴근을 보채던 동료들의 잔소리였는데, 난 이 모든 게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열두 시를 가리키는 시계 같은 것들은 방해요소라고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슬럼프를 이해하지 못했던 3년차 만 2년을 찍고 딱 3년차로 넘어가는 즈음부터 내가 굉장히 날아다녔는데, 일단 주어진 업무에서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었고 무조건 연차가 많다고 테크리딩을 하는게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기회와 권한을 흔쾌히 양보해준 당시 동료들과 매니저 덕분에 무려 3년차가 테크리딩을 했었고, 그 뒤로도 연속으로 4개의 프로젝트를 리딩하며 매해 꾸준하게 높은 동료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슬럼프란 것은 나랑 거리가 먼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3년차 김소연의 모습 5년차에 찾아온 매너리즘은 이직으로 해결이 되었다. 그러다 갑자기 만 5년이 가까워지던 때에 매너리즘이 찾아왔었는데, 매너리즘을 겪던 당시의 가장 큰 고민은 크게 아래 2가지였다. 나와 주변 동료들 간의 온도 차가 다르다고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난 업무를 잘하는 것이지, 개발을 잘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프로젝트를 테크리딩했지만 어쨌든 동료들의 마인드케어를 하는 매니저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 혹은 동료들보다 프로젝트가 더 중요할 때가 많았다. 어쩔 땐 동료들을 극한으로 몰아가거나 상처를 주기도 했었고, 그런 온도 차를 해결(?)하는 데에 코딩보다 많은 시간을 쏟다 보니 내 모습이 개발자 같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안된다는 사람들을 보면 될 때까지 안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내가 과연 개발자로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도 자주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난 A를 위해서 B를 하는 건데 B를 더 인정받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그렇게 몇 달을 날 괴롭히던 매너리즘은 이직함으로써 의외로 쉽게 사라졌다. (그전에는 이직이란 선택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주어진 상황에서만 문제를 해결하려 했었다.) 환경이 변화 된 후 날 괴롭히던 많은 생각으로부터 편안해졌고, 새로 만난 동료들과 새로운 업무 속에서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받으며 매너리즘은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그때 써놓았던 글을 읽으면 이제는 더 이상 와닿지 않지만, 짠하기도 하고 성숙함과 동시에 미숙했구나 싶다. 그 당시 작성한 글 7년차에 찾아온 번아웃은 이직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다 7년차가 되는 즈음 다시 한번 슬럼프가 찾아왔다. 5년차에 찾아온 슬럼프가 매너리즘이었다면, 7년차에 찾아온 슬럼프는 번아웃이란 단어가 정말 잘 어울린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야 번아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처음엔 위의 2~3년전쯤 찾아온 매너리즘 수준 정도의 슬럼프라고 생각했었다. 2~3년전 찾아온 매너리즘은 이직으로 해결을 했으니, 이직이 도움이 될 거라는 착각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로 이직을 결심한 건 아니고 내 나름의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많은 것들을 하고 결정을 내렸다. 임원 알레르기가 있다는 시덥지 않은 농담이나 하던 내가 1차 리더, 2차 리더, 3차 리더, 심지어 (구)리더까지 찾아가며… 나의 슬럼프를 업무를 통해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나 혹은 파트원들의 슬럼프가 생길 때마다 퇴사자를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다. 나와 파트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회사의 방향에 우리가 공감하고 따라갈 수 있기 위해서, 우리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하기 위해서. 대충 그런 노력과 싸움들을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내 롤이 꽤 이상해졌다. 내가 이런 것들을 생각보다 잘한다는(wellX not stressfullyO) 사실을 깨달았고, 개발 실력보다는 언변과 추진력이나 책임감 같은 것들로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게임으로 치자면 스탯을 이상하게 찍었다. 스탯 잘못 찍은 개발자 (추진력 1650/1650, 개발 0/0) 그러던 중에 이직 오퍼를 받았고, 리더들과 길고 긴 상담 끝에 결국엔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직을 하면 이 무기력한 매너리즘이 해결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아 이거 매너리즘 아니구나. 내 번아웃은 더 이상 나의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것이었다. MBTI나 애니어그램 같은 심리/성향 테스트를 하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키워드가 ‘성과지향’이다. 난 굉장히 목표지향적이고 낙천적이며 과업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매너리즘은 성장이 잠시 정체되어있던 나에게 성취감을 안겨줌으로써 해결되었던 반면, 번아웃은 그런 과업조차 무게감으로 느껴졌다. 새로운 일이 시작되었는데 전혀 기대되지 않았고, 나를 자극시키는 태스크들이 이제는 내 몸을 눌렀다. 모든 것에 지쳐있었고 업무능률이 저하되고 있음을 느꼈다. ‘워크=라이프’였던 나에게 업무능률의 저하는 삶의 질까지 영향을 미쳤다. 더 이상 내일이 기대되지 않았고, 돌려 막기 하다시피 하루를 끝내면 이제 이 모든 것을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냥 해이해진 것뿐인데, 왜 나는 예전처럼 다시 추스르고 돌아가지 못하고 있을까? 이제는 그럭저럭 먹고살 만한 건가? 내 꿈을 잊어버렸나? 생각해보니 그렇게 아등바등 살 필요도 없지 않나? 아니 잠깐, 내가 아등바등 살긴 했나? 이쯤 부터 일상 자체도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그저 1차원적인 쾌락을 쫓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먹고 싶을 때 먹었고 자고 싶을 때 잤다. 스스로와 타협했고, 날이 갈 수록 책상이 점점 어질러졌다.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난 번아웃이 올 자격이 없다. 내가 번아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난 번아웃이 올 만큼 많은/강도높은/어려운 일을 하지 않았다. 빡세던 첫 회사를 5년을 다녀도 괜찮았는데, 이 정도에서 무슨 번아웃? 그것도 2년밖에 안 다녔는데? 사무실에 출근해서 동료들과 합을 맞출 때는 여전히 재밌다. 딱히 안 쉰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연차 잘 썼다. 좋은 리더와 동료들 덕분에 리프레시 기회도 여러번 받았고 되려 내가 회사에 갚았으면 갚아야했지 못 받은건 없었다. 그런데 그럴때마다 무력함이 더 커져갔다. 전투형 인간인 내가 회피형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집중도도 자꾸만 떨어지고, 1.5인분을 해도 모자른 마당에 1인분도 못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PO를 제안 받을때 평소의 나라면 굉장히 신나고 두근거려야하는데 그때는 부담감으로만 다가왔었다. '번아웃은 핑계고 사실은 그냥 일을 하기 싫은건 아닐까?'하는 죄책감에 괴로워했었다. 진짜 이러다가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겠다 싶을때,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사실 이 단계가 가장 어려웠다. 번아웃 그게 뭔데. 어떻게 하는건데. 관련된 책도 많이 읽어보고 혼자 여행이라도 떠나서 생각할 시간을 가졌더라면, 더 양질의 성찰이 가능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럴 기력조차 없어서 그냥 가성비 성찰을 했다. 사무실에서 일하기 싫을 때마다 옥상에 올라가며, 출퇴근할때마다 창 밖을 바라보며, 잠 드는게 아쉬워서 눈을 감으며. 한번에 바로 떠올리지는 못했다. 그냥 추적을 하고 또 하다보니 도달한 원인들이다. 1.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업무의 연속 딥러닝 프로젝트를 잠시 할 때 딱 이런 박탈감을 느꼈었는데, 어떠한 데이터를 가지고 최적화된 모델링을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정량적이지도, 정성적이지도 않다고 느껴졌다. 하이퍼파라미터를 미세하게 조정하며 데이터에 맞는 모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얻은 성과가 나의 능력 같지 않았다. 수상을 했지만 남의 잔치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 뒤를 이어서 맡게 된 그 당시의 업무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나에게 권한이 있긴 한데.. 뭔가 애매하게 있었다. 앱 개발을 하려면 API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백엔드 개발 조직에는 나의 권한이 없기 때문에 뭘 할 수가 없었다. 조직장들을 열심히 설득해서 인력을 충원하고 나면 그 인력들은 priority가 더 높은 다른 업무들에 배치되었다. 어느 순간엔 내가 개발자가 아니라 사업을 따러 다니는 사람 같았다. 푸하하..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글로 써놓으니 내가 쉽게 포기한 것 같지만 난 장장 2년을 그 환경을 만드는 데에 많은 시간과 마음을 썼다. 홍보하겠다고 기술 블로그도 만들고.. 서버 개발자 입사할 때마다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엄청 잘해줌.. 여튼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하는 것 같은데 상황이 나아지질 않는다는 생각에 박탈감을 많이 느꼈다. 앱이 왜 이렇게 느리냐는데, 가장 잘 해결할 수 있지만 절대 해결하지 못하는 나 2. 과도한 셀프 채찍질 올해 초부터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을 바꿨었다. 작년까지는 task 단위였다면 올해는 time 단위로 측정하기 시작했는데, 30분 단위로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록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원하던 하루의 목표를 이룰 때마다 기뻤다. 그러나 어느 날엔 유튜브를 보거나 친구를 만나면 그날 나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이 되었다. ‘아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책을 읽었어야 했는데..’ 이런 반성을 매일 해야만 했고, 7색 형광펜으로 시간마다 무엇을 했는지 색을 칠하다 보면 빨간색으로 색칠된 ‘유튜브’, ‘넷플릭스’ 칸들이 나에게 잘못된 하루를 보냈다고 혼을 내는 것 같았다. 이 주엔 유튜브도 보지 않았고 약속도 잡지 않았다. 3. 체력의 하락 갑분 체력?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번아웃의 원인을 깊게 추적했다. 일차적인 원인은 COVID19일 수도 있지만, 헬스장에 출입할 수 없게 되면서 꽤 오래 지속된 아침 운동 습관이 한 방에 무너졌다. (물론 홈트를 하면 되지만 하지 않음.) 내가 고강도 운동을 했던 건 아니지만, 그 1시간의 운동을 안 함으로써(혹은 그만큼 식사와 술로 스트레스를 풀면서..) 체력이 떨어지고 체중이 늘었다. 2~3개월 정도 쉬다가 다시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살이 찐 것을 만회하고 싶어서 탄수화물을 잘 안 먹었다. 그랬더니 체력이 더 떨어졌다. 체력을 기르려고 운동을 하는 건데 체력이 없어서 운동이 안 됐다. 쉽게 피곤하고 쉽게 지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체력을 되찾으려면 체력을 길러오세요. 채찍질의 대가였던 내가 이세계에선 번아웃의 원인? 이런 과정을 통해 내/외부적인 요인이 모두 작용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외부적인 요인이 주원인이었다면 환경이 바뀜으로써(=이직) 해결이 되어야 했는데 그러고도 번아웃이 지속되는 걸 보니 내부 원인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난 열심히 살아보려 했던 건데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꼴이라니. 스스로 불러온 번아웃에 짓눌려 그러다 멈춰보니, 번아웃의 원인을 찾으려 고민하는 과정이 의외로 이 번아웃을 이겨내는 데에 도움이 되고 있었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높은 자존감에 감춰져 있던 내가 아닌 지쳐서 보잘것없는 인간 김소연을 돌아보며 지속적인 회고를 했었고, 번아웃 기간 이전의 나를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내가 지향하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approach 하는 과정이 꽤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성장하는 나’보다 ‘완벽한 나’만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걸 깨닫는 데에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성장이라 함은 매 순간 더 나아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가끔은 절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받아들이고 극복해야 한다. 글을 시작할 때 ‘이제 다시 자리를 잡아가는 중’ 이라고 했는데, 나는 아직 이 시행착오의 비용을 받아들이는 과정(아직 싸우는 중)에 있다. 과거의 난 무의식중에 긍정적인 결과만 취급했었고, 긍정적이지 않은 것들은 과정을 잘 포장해서 결과로 만들기도 했었다. 완전한 결과 중심적인 나에게, 불명예스러운 나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번아웃은 결과 중심의 사고를 하던 내가, 지나온 과정을 깊게 성찰할 수 있던 부정적이고도 특별한 기회다. 그러니 나는 이 번아웃을 끌어안기로 했다. 과정도 나고 결과도 나다. 1. 직무를 변경했다. 번아웃을 해결하려고 이직한 게 아니라 번아웃 중에 이직을 한 것이지만, 어쨌든 이직하면서 직무를 변경했었다. 6년 동안 앱 개발을 하다 보니 업무에 있어서 더는 어려운 게 없었고, 할만한 수준을 넘어 재미없는 수준까지 왔었던 것 같다. 어차피 은퇴할 때까지 앱 개발만 하다가 늙을 것은 아니니 다른 것을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이직 후 현재는 풀스택 웹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이 자체가 번아웃 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적어도 새로 이직한 상황에서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번아웃을 극복하려고 마음먹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동기부여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상에는 변화가 찾아왔으므로 꽤 시기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2. 주 단위의 주기적인 회고를 시작했다. 원인을 숙청하는 걸 넘어서, 이제까지 서툴렀던 Self-care를 앞으로는 좀 더 잘 해내고 싶었다. 나를 되돌아볼 시간이 주기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끼면서, 단기적인 check point들이 있어야 하고 마인드케어에도 시간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번아웃의 원인을 또다시 나에게서 찾아내는 수치를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반성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다만 앞으로는 이번에 겪었던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내 자신에게 시행착오의 비용을 적립해주기로 했다. 결과가 안 좋았어도 과정이 좋았거나, 과정이 아쉬웠어도 결과가 좋다면 긍정적인 것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배운 게 있다면 실패가 아니고 시행착오인 것으로 인정할 것이다. 스스로 꾸준한 실패를 주입하고 적립해서, 번아웃 바이러스를 대비하는 백신을 맞기로 했다. 3. 아침 수영을 다시 등록했다. COVID19가 물론 무섭긴 했지만, 무기력한 내 모습이 더 싫었던 것 같다. 체력을 다시 기르는 게 다른 것보다 중요할 것 같았다. 등록한 뒤로도 여전히 무기력함과 싸우는 중이라 안 나갈 때도 있었지만, 큰맘 먹고 수영을 다녀오고 나면 세상 누구보다 잘살고 있는 것 같아서 “원데이 자존감 pass”가 생긴다. 그리고 적어도 수영 중에는 아무 상념 없이 수영만 하게 되니까 힘든 것도 모르고 즐겁고 재밌기만 하다. 나에게는 또 다른 도피처이자 순기능이다. 혹시라도 번아웃/슬럼프 키워드를 통해 이 글을 보게 되신 분들께 이 짤을 헌정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