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으레 하듯이 새해 계획을 세우다 보면 ‘내가 되어야 할 것’의 그림을 그려놓고 계획을 세우곤 했다. 그러고 나면 연말마다 못 이뤄낸 목표를 두고 내가 왜 그것을 못 해냈는지에 대한 회고를 하곤 했었는데, 그 반성 타임이 싫어서 올해는 ‘잘 지키기 위한 노력‘보다 ‘잘 지키기 위한 수단’ 같은 필승법을 가져가야겠다는 전략을 짰다.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기. 그게 내 2023년 필승법이었고 덕분에 올해 회고는 예년보다 소박하고 사사로움에 예년보다 편안하다.


👟 달리기 시작

천식+평발+무릎 연골 손상 등의 이유로 달리기가 적합한 몸은 아니긴 하지만 지구력, 정신력을 늘리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달리기를 시작하며 인터벌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RunDay’ 앱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는데, 처음 1~2주 차 때 1~2분 달리기만 시키더니 어느 순간 6주 차가 되니 갑자기 7분씩 달리라고 하더라. 그때에는 그 7분이 너무 힘들어서 달리다가도 스스로 ‘컨디션이 안 좋다’ 등의 핑계를 대며 달리기를 멈추곤 했었다.

그렇게 한창 진도를 못 나가던 중 어느 날은 포기하기 싫어졌다. 사실 그때에는 잘하려고 했다기보단 나 자신과의 은밀한 타협 같은 거였다. ‘속도를 낮추고 뛰자.’ 그렇게 8.5k/h로 뛰던 것을 7.5k/h로 속도를 낮추고 뛰었더니, 저속도의 7분 달리기는 생각보다 너무 가뿐하고 쉬웠다. 오래 달리기 위해서 천천히 달리는 것. 너무 간단한 진리인데 나는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 몰랐다.

3달 동안 거의 매일 쉬지 않고 달리며 '런태기'를 극복해 나갔다. 결과는 완주!

🏊‍♀️ 수영, 아니 유영

수영에서도 달리기와 마찬가지였다. 영법 교정만 해왔던 기존과 달리 올해는 1시간에 2km를 쉬지 않고 수영하기 위한 목표를 잡고 노력했는데, 처음엔 왕복 5번만 해도 숨이 차고 힘들어서 이걸 어떻게 해내지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같은 레인에서 내겐 할머니쯤 되어 보이는 연세의 여성분이 쉬지 않고 1시간 내내 느릿느릿하게 수영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분의 뒤를 따라 천천히 수영을 해봤다. 그러다 보니 조금 더 속도를 내어도 완주할 수 있겠다 싶은 나의 페이스를 찾게 되었다. 아래는 그 과정에 있던 그날의 일기다.

내 모든 힘을 써가며 수영할 때는 34분 동안 21 랩을 돌았다.
6'03" 페이스다.

힘을 풀고 저강도로 천천히 돌면 더 많이 유영할 수 있음을 깨달은 오늘은 43분 동안 45 랩을 돌았다.
3'52" 페이스다.

오늘은 처음으로 1km가 넘는 거리를 자유형으로 왕복하게 된 날이기도 하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나는 이제 1'57" 페이스로 39분 만에 2km를 쉬지 않고 수영할 수 있다.

🏃‍♀️ 생애 첫 마라톤 출전

그렇게 수영도 달리기도 꾸준히 하다 보니, 지구력과 폐활량이 많이 늘었다. 어느새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면서 묘한 자신감이 붙어 10K, 11K 마라톤을 신청하게 되었다. 그런데 마라톤 출전을 한 달 앞두고 무릎이 엄청 안 좋아지면서 가장 열심히 연습해야 할 때 오히려 연습을 못 했다. 일상생활 중에도 무릎이 많이 아파서 출전하지 말까 하는 고민도 종종 했었고, 어느 날은 날씨가, 어느 날은 계단이, 어느 날은 유전자가 원망스러운 날들을 보냈다.

여기서 소신 발언을 하자면 난 딱히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운동이란 나에게 있어, 그냥 ‘추구미’ 같은 거다. 그런데 이제 컨셉에 사로잡혀서 지독한 컨셉충이 되어 버린.. 사실 마라톤도 그래서 나갔다. ‘달리는 걸 너무 좋아한 나머지 아픈 무릎도 잊고…’ 이런 시나리오가 아니라, 그냥 ‘마라톤에 나가는 내 모습’에 취해서 나간 거다. 🥲 꽤 민망하고 웃기지만 여튼 그렇게 아픈 무릎을 이끌고 두 번의 마라톤을 완주했다.

뉴발 10KM 마라톤, 그리고 서울달리기 11KM 마라톤

🚵‍♀️ 철인 3종 동호회 가입

당연히 철인 3종 동호회에 가입하려고 가입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날 사내 게시판에 프리다이빙 동호회 홍보 글이 왔길래 반가운 마음에 가입 신청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프리다이빙은 동호회 내 작은 소모임 같은 거였고, 사실 그 동호회는 수영+런닝+달리기를 하는.. 이른바 ‘철인 3종’ 동호회였다. 동호회원 중 한 분이 다이빙 버디도 구하고 동호회도 확장할 겸 올린 홍보 글에 제대로 낚여버린 것이다. 제가 갑자기 철인 3종 동호회를 가입했다고요..? 😳

그러다 동호회 게시판에서 ‘한강 수영 크로스 챌린지’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관심이 생겨서 문의했는데, 오픈워터 수영을 처음 해본다고 하니 수영 반장님(?)이 거의 혼내듯이 잔소리하면서 헤드업 영법을 배워야하니 당장 이번 주말에 수영 정모를 나오라고 했다. 솔직히 동호회 활동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반장님이 무서워서… 나갔다.

정모에 나가보니 내가 엄청나게 어렸다. 그냥 어린 게 아니라.. 진짜 어렸다. 정신 차려보니 내가 모르는 아저씨들이랑 수영을 하고 있었다. (ㅠㅠㅠ) 그리고 나만 여자였다. 그래서 진짜 도망가고 싶었다. 수영 정모 끝날 때마다 브런치도 먹고 헤어진다고 해서 난 그때까지도 국밥 같은 거 드시러 가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따라가 보니 진짜 리얼 ‘브런치’를 사주셨다. 다들 정말 친절했고 텍스트로는 너무 무서웠던 수영 반장님도 한 시간 내내 헤드업 영법을 봐주시면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때마침 그 당시 다니던 수영장 강습에 불만이 많았는데, 그날 뵀던 동호회원 한 분이 본인이 다니는 소규모 레슨 센터를 소개해 주셔서 그 뒤로는 그분과 함께 수영도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날 수영 가는 길에 스몰톡으로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는 말을 했더니, 갑자기 가르쳐주시겠다고 하시며 어디선가 자전거를 빌려오셨다. 알고 보니 이분이 자전거 반장님이셨다. 반장님의 초등학생 딸이 쓰던 헬멧을 쓰고 점심시간마다 자전거 앉는 법부터 변속, 공기 주입 방법까지 배웠다. 처음 라이딩을 나가는 날엔 반장님이 영상도 찍어서 만들어주셨다. (그 영상은 지금 봐도 웃김 진짜..) 여튼 그렇게 수영도, 자전거도 타게 되고 그러다가 위에 말했던 것처럼 마라톤도 나가게 되면서 런닝 반장님도 만나게 되고… 그렇게 난 철인 3종 동호회의 일원이 되었다.

수영 정모 첫날 얻어먹었던 '진짜' 브런치

🏅 첫 오픈워터, 그것도 한강 횡단

한강 횡단을 준비하는 동안, 출퇴근 시간에는 자유 수영을 가고 점심시간에는 런닝을 하느라 일 3회 운동을 했다. 게다가 수영 레슨이 있는 화/목요일에는 일4회 운동을 했다. 남들 주 3회 운동할 때 나는 주 17회 운동했다. 매일 다섯 번씩 머리를 감으며 ‘이게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그렇게 한강 횡단을 준비했다. 어쩌겠어, 이것이 내 ‘추구미’니까…

한강 횡단의 진짜 큰 산은 대회 당일에 있었다. 횡단 장소는 잠실대교였는데, 잠실대교 밑에는 수중보가 있어서 물살이 꽤 거세다. 나는 그곳을 횡단해야 하는 것이다. 달리는 지하철 창 너머로 보는 한강은 분명 반짝이는 하늘빛이었는데 내가 뛰어들어야 하는 한강은 묘하게 청록색과 회색이 섞인 갈색이었다. 수많은 인파가 한 번에 입수해야 하기 때문에 안전 요원들이 참가자들의 부이를 마구 당기고 밀며 입수시킨다. 처음 맡아보는 강 비린내와 거센 물살 속에서 그렇게 초반 300M를 패닉 수영했다.

물살이 너무 세서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면 내가 왼쪽으로 떠밀려가고 있었다. 분명 헤드업 한 채로 수영하는데 자꾸만 자꾸만 계속 몸이 밀린다. 아니 헤드업을 하긴 하는데 자꾸 내 이마가 다 잠기도록 파도가 친다. 물속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자꾸 누군가의 오리발이 나를 치고, 한강은 생각보다 차갑고 깊었다. 물살에 떠밀리지 않도록 대각선으로 스트로크하면서 내가 한 생각은 딱 하나였다. ‘아, 이거 내년엔 절대 하지 말아야지…’

‘나 이거 낙오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나?’ 의심이 들던 찰나에 어느 순간 종점이 보였다. 그제서야 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완주하고 나니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어서, 물 밖으로 나오고도 내가 나온 물속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기록은 놀랍게도 실내 연습 때보다 훨씬 잘 해낸 1’27”. 내가 23분 만에 한강을 횡단했다.

금메달, 그리고 함께 완주한 동호회 사람들

🤿 프리다이빙 자격증 취득

프리다이빙도 드디어 다시 시작했다. 3년 전쯤 처음 프리다이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자마자 COVID19가 몰아치면서 당시에 선입금한 3n만원 강습료가 공중분해 되었던 아픈 기억이 다시 떠올랐지만 어쨌든 새 강사님을 구했다. 유산소 운동들 덕분에 폐활량이 늘어서 그랬는지 스태틱(숨 참기)도 첫 측정에 바로 2분 45초가 나오고, 다이나믹(잠영)도 바로 성공하긴 했는데, 역시나 3년 전처럼 이퀄라이징이 잘 안됐다. 가끔 극소수의 확률로 처음부터 이퀄이 잘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던데 아쉽게도 그게 내 얘기는 아니었다. 강사님이 하라는 대로 운전 중에도, 업무 중에도 쉬지 않고 성문을 열고 닫으며 프렌젤 이퀄 연습을 하는데 귀가 안 뚫려서 속상해하던 중에 강사님이 물 밖에 나와서 목 움직임을 한번 보자고 했다. “물 밖에선 잘 되는 거 같은데? 이번엔 물 속에서 하던 대로 코를 잡고 다시 해보세요.” 이러시길래 그제서야 알았다. “아.. 물속에서 이퀄할때 코 잡아야 해요?” 황당해하는 강사님을 뒤로한 채 코를 잡으면서 이퀄을 하니 말도 안 되게 너무 잘 된다. 슉슉 내려가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핀질하다가 처음으로 16M까지 내려가면서 딥스테이션 바닥에 머리도 찧었다. 그렇게 드디어 AIDA level 2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제 아파트 7~8층 정도의 깊이만큼 하강+잠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숨 참기 + 잠영 + 구조 + 하강 + 이론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

여름휴가로 다녀온 보홀 바다. 물속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

🏋️ F45 100회 달성

6월 말 쯤 한강 횡단을 완료함과 동시에 회사 정기 주차에 낙첨하게 되면서 수영을 다니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다가 팀원이 F45 일주일 체험을 함께해보자고 꼬셔서 7월에 처음으로 F45란 곳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날이 내 올해 중 가장 죽음에 가까웠던 날이 아닐까싶다. PT도 100회 받아봤고 유산소도 꾸준히 해왔지만, 그런 고통은 정말 처음이었다. 쉽게 말하면 크로스핏을 조금 더 유산소처럼 하는 운동인데, 운동 타임이 45분이어서 Functional 45, F45다.

분명 네명이서 함께 일주일 체험을 등록했는데 하루 만에 모두 떨어져나가고 나 혼자 남았다. 나는 일주일 체험비로 결제한 3만원이 아까워서 계속 나갔다. 매일 점심마다 영혼 탈곡된 채로 복귀해서 힘없는 손으로 점심 먹고 그랬는데, 막상 일주일 다 하고 나니 첫날만큼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그리고 회원 등록하면 일주일 체험 비용 3만원도 환급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F45를 다니게 됐고, 하반기 동안 열심히 한 덕분에 100회 출석을 달성했다. 🎉

매 운동이 끝나면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자세히 보면 2024를 표현한 것입니다.)

열심히 출석한 흔적들과 나의 마일스톤

그리고 🚴 로드바이크 🏌️ 골프 🏂 스노우보드 🏃 트래킹

아래는 수영이나 런닝만큼의 시간을 쏟진 않았지만 나름 즐겁게했던 운동들이다. 일부러 계절을 나눠서 했던 건 아닌데 딱 4계절에 맞게 봄에는 골프, 여름에는 로드바이크, 가을에는 트래킹, 겨울에는 스노우보드를 탔었다. 그 외에도 소소하게 가끔 서핑, 크로스핏 등등을 했다. 사실 각 챕터별로 쓰자면 더 쓸 수 있는데 이러다간 연말 회고가 아니라 운동 기록이 될 것 같아서 이쯤에서 자제하고 사진으로 대체해 보려 한다.

💻 SQLD 자격증 취득

회고의 반 이상이 운동이다 보니 내가 운동만 하는 사람 같겠지만 어쨌든 난 개발자다(…). 7년 반 정도 앱 개발을 하다가 현 회사로 이직하면서 웹 풀스택 개발로 직무를 변경했으니, 풀스택이 된 지 이제 2년반 정도 된 셈이다. 그런데 이게 참 그렇다. 막상 웹 개발을 주니어부터 다시 시작하려니 실무 능력이 떨어지는 내 모습이 참 답답하다. 전생 기억 그대로 환생 시켜준대서 개이득 외치며 콜 했는데 알고 보니 아프리카 대륙에서 환생시켜 준 그런 느낌이다. 여튼 백엔드도 프론트엔드도 아직 공부할 것이 너무 많고 갈 길이 멀었다는 뜻이다. 개발 연차가 있으니까 금방 해낼 줄 알았는데 팀 시니어들에 비하면 턱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라고 하긴 뭐하지만,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SQLD 자격증을 공부했다. 게다가 우리 프로젝트에서는 JPQL을 쓰고 있고 그마저도 QueryDSL을 작성할 일이 거의 없어 가장 기본적이여야할 쿼리 능력이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컸다. 그런데 문제는 이 SQLD 자격증이 대학생도 취득하는 거라는데 난 너무 어려웠다. 쿼리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실무에서 쓰지도 않는 함수를 외워야 했고 계층형 쿼리는 아직도 반 이상은 제대로 이해 못 한 것 같다. 시험장에서도 전부 나가는데 나 혼자 시간 끝까지 다 쓰며 앉아있었다. 공부 더 열심히 할 걸 후회하며 헷갈리는 문제를 몇 번이고 다시 풀어가면서 마킹하다가, 시험 종료 종이 울려서 울며 겨자 먹기로 제출하고 왔는데… 대체 어떻게 붙은걸까? 여튼 붙었다.

심지어 헷갈리는 문제 제외하고도 이미 합격점이었다.

⚾️ KBO 전 구장 출석

회사 행사로 NC다이노스 야구를 보러 갔다가 야구에 빠져서 2년째 계속 야구에 미쳐있는 중이다. 작년에는 수도권+홈구장 위주로만 다녔는데, 올해는 전 구장을 다 가보고 싶어서 ‘KBO 전 구장 원정 응원가기’를 목표로 잡았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운 도전이었다. 지방까지 내려가서 경기를 보는 만큼 한번 갈 때마다 2연전, 3연전 시리즈를 다 보고 오려 노력했는데, 전국 구장이 10개다보니 그 짓을 최소 10번 이상 해야 했다. 한 번씩만 다녀온다고 쳐도 대략 30일 정도니, 일 년 12개월 중 최소 꼬박 1개월 이상을 야구 보는 데에 시간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야구라는 게 그렇게 순탄하지가 않다. 이미 난 숙소도 다 예약하고 연차도 내고 운전까지 해서 땅끝까지 내려왔는데 우천 취소 폭탄 맞고 갈 곳을 잃어버리는 가슴 찢어지는 경험을 해야 한다. 게다가 3연전 다 져서 스윕당하는 경기 보고 올라갈 때는 진심으로 웃음이 안 나온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든 그런 도전이었다. 물론 NC가 야구를 잘했으면 마음은 안 힘들었겠지? 😊

그래도 포스트시즌 진출해 줘서 기뻤던 올해

🏆 23시즌 최다 관람자 선정 (+내년 홈 경기 시구 위촉)

여튼 그렇게 직관하러 다니다 보니 잠실, 고척, 수원, 인천, 대전, 대구, 광주, 창원, 부산까지 구장별로 대략 최소 5번 정도는 원정 응원을 다녀왔다. 어떤 지인들은 가끔 내가 직장 생활을 청산한 줄 오해한다. (하지만 실제론 이만큼 개인 시간을 내기 위해 일도 엄청 많이 했다.) 결론적으로 난 올해 시즌 144일 중 50일은 넘게 매일 야구장에 있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내가 모기업에서 집계한 최다 관람자로 선정되었다. 🫢 게다가 덕분에 내년 시즌 NC다이노스 홈 경기에 시구자로 위촉이랄지, 초청이랄지… 여튼 선정되었다. 처음에 연락받고는 부담이 엄청나게 컸는데,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의외로 너무 기특해하셔서(?) 올해 처음으로 효도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내년 회고엔 야구 시구 후기와 함께 찾아올 수 있을 것 같다.

최다 관람자로 선정된 후 선수들이랑 함께 사진도 찍었다. 무려 아시안게임 주역들과...

🙏 1년 이상 안 만났던 친구들 만나기

올해 또 다른 목표는 ‘사람들 만나기’였다. 그것도 1년 이상 안 만났던 친구들 10명 만나기. 너무 오랫동안 안 본 친구한테 만나자고 하면 다단계 가입이나 결혼 초대 등을 의심할 것 같아서 1년 정도의 구간을 목표로 잡았는데, 막상 만나다 보니 1년을 훌쩍 넘어 10년 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도 참 많이 만났다.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연락이 끊긴 중학교 친구들, 고등학생 때 같은 기숙사 방을 썼던 룸메이트들, 점점 연락을 못 하게 되었던 이전 직장 동료들, 그리고 그때엔 분명 친했는데 환경이 멀어져서 서서히 못 만나게 된 친구들까지. 목표로 잡았던 10명보다 훨씬 많이 만났다. 만나다 보니 서로의 기억 속 친구들 이름이 나오고, 그러다 다음 모임에는 또다시 인원이 늘어서 만나고… N년만에 연락하면 다들 부담스러워할 줄 알았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정말 서로가 서로를 너무 반가워했었다. 어쩌면 내가 올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 아닐까 싶다. 내가 직접 연락하는 경우 말고도 ‘언제 한번 밥 한번 먹자’는 평범한 안부들을, 올해는 그냥 넘기지 않고 약속을 잡아댔다. 덕분에 한 해가 너무 바쁘고 정신없었지만, 나에게는 정말 행복하고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사람들을 만날 때 가장 행복한 나

💌 동료들에게 편지 쓰기

올해가 되면서 또 한 게 있다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편지를 쓴 일이다. 특별히 고마웠던 분들이 많아서 조그맣게 편지를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실원들 모두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한두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던 편지쓰기는 꼬박 3일을 주구장창 써도 끝나질 않았고, 동료들에게 편지를 주고 나니 묘한 해방감과 함께 꽤 뿌듯해져서 딱 그 보람만큼의 가치 있던 일 정도로 마무리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분은 내가 쓴 것보다 훨씬 길게 답장을 주셨다. 그 답장을 몇 번이고 한참 읽고 나서야 동료들이 왜 내 편지에 이렇게 고마워하는지, 왜 미안해하는지, 그리고 왜 감동하는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각 편지봉투의 그림은 친한 디자이너분이 그려주셨다.

💇‍♀️ 3년간 기른 머리 기부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단발로 살다가, 모발을 기부하면 소아암 환자에게 가발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머리를 기른지 3년 쯤 되었다. 기부하기 위해선 파마와 염색을 하지 않은 건강한 자연 모의 상태로 25cm 이상을 길러야 하는데, 기르다 보니 위에 서술한 대로 운동 스케줄 상 하루에 다섯 번씩 머리를 감게 되면서 ‘긴 머리’가 굉장히 지치고 거추장스러워졌다. 그때부터는 한 달에 열 번씩도 더 머리를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이 있었지만 최대한 긴 기장의 머리를 기부하고 싶어서 겨울까지 꾹 참았다. 막상 머리를 자르는 당일은 묘하게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미용사 선생님께 자르고 난 모발을 넘겨받으니 숱도 많고 기장도 길어서 가발이 참 예쁘게 잘 나오겠다 싶어 뿌듯했다. 그렇게 전달 된 내 모발은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가발이 되었다.

허리까지 오던 긴 머리를 잘랐다.

🧑‍🏫 코딩 교육 봉사활동

매년 꾸준히 청소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려고 노력한다. 재능 기부를 통한 직무 멘토링 같은 것들도 자주 했고, 작년과 올해는 성남시 초등학생들에게 코딩 교육을 할 수 있는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이번 봉사활동은 아두이노와 라즈베리파이를 연결하고 파이썬 코딩을 해서 노래도 나오고 빛도 내는 전자 오르골을 만드는 클래스였다. 1:1로 짝을 지어서 함께 페어 코딩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매칭된 짝꿍과 아이스브레이킹 차원에서 대회를 해보니 둘 다 도구리 캐릭터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검증(?) 질문들에 제대로 대답을 못 해서 인정받지 못했다. 나 진짜로 도구리 좋아하는데ㅠㅠ) 다행히 나한테 도구리 스티커가 정말 많아서 스티커를 왕창 가져오니 짝꿍 친구가 신나서 열심히 오르골을 꾸며줬다. 원래 그러면 안 되는데 몰래 내 도구리 인형도 줬다. 심지어 저녁 먹을 때 몰래 빠져서 불닭볶음면도 같이 끓여 먹었다. 정말 밝고 긍정적인 친구여서 회고를 쓰는 지금도 꽤 인상 깊게 회상이 된다. 기회가 되면 또 볼 수 있을까?

짝꿍 친구가 열심히 꾸며준 우리 팀 오르골

📚 올해 읽은 책은 11.5권

독서를 편식하는 습관을 고쳐보고자 장르별로 골고루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결국 내가 완독할 수 있는 책은 정해져 있었다. 그 와중에 ‘총균쇠’는 반 정도까지 읽다가 결국 다 못 읽고 포기했다. 그래서 올해 읽은 책은 12권이 아닌 11.5권이다.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간다 (유성호), 말의 품격 (이기주), 우리는 왜 잠을 자야할까 (매슈 워커), 숨 (테드 창), 총균쇠 (재러드 다이아몬드), 뇌의 기막힌 발견 (스티븐 후안), 살고싶다는 농담 (허지웅), 자기 결정 (페터 비에리),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 (웃따), 언어의 우주에서 유쾌하게 항해하는 법 (신견식),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로랑 베그),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유시민).

내가 올해 읽은 책.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허지웅의 '살고 싶다는 농담'이다.

🐲 용인으로 이사

사실 올해의 가장 큰 변화는 8년간의 서울 자취 생활을 끝마치고 용인으로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판교로 출퇴근하게 되면서 서울살이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가게 되어 회사 인근으로 이사 갈 필요가 생겼고, 운전하다 보니 주차장이 협소한 서울 오피스텔에서 살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8월 말 용인으로 이사를 했고, 무려 거실이 있는 투룸을 갖게 되었다. 집이 커진 덕분에 요리도 하고, 피아노나 컴퓨터도 둘 수 있고, 늘어나는 짐에 마음 쓸 필요가 없어서 삶의 질이 올라갔다. 오피스텔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오다 보니 가전/가구를 모두 새로 사야 해서 셀프 혼수하는 느낌이라 지출이 많긴 했지만, 오로지 나만을 반기는 나의 새로운 집이 너무 좋다.

친구들이 놀러 올때마다 에어비앤비 온 것 같다고 하는 우리 집

💤 마치며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걸 하자는 필승법은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예년보다 공부도 덜 하고 특별한 노력도 덜 했지만, 오히려 훨씬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던 한 해였다. 🏃 마라톤도 나가고 🏊 한강 수영 횡단도 하고 🤿 프리다이빙 자격증과 💻 SQLD 자격증도 취득하고 💇‍♀️ 모발도 기부하고 ⚾️ 시구도 하게 되고 🫶 오래된 친구들도 만나고 💌 동료들에게 편지도 쓰고 🧑‍🏫 봉사활동도 하고 📚 책도 읽고 🏡 이사도 하고. 제목에도 적은 대로 내 올 한해는 딱 그런 한 해였다. 스펙트럼을 넓힌 해. 사는 건 레벨업이 아니라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