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삶의 사용설명서를 뒤늦게 받아들였다.
ADHD와 APD를 진단 받은 개발자의 이야기
2025-04-13 22:51
나는 멀쩡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깨달았을 때 이상하게도 안도했다.
평생을 “왜 이럴까?”라는 질문 속에 살았으니까. 정리되지 않는 책상, 자꾸 놓치는 약속, 자주 되묻는 대화, 산만함과 과도한 몰입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삶. 나만 그런 줄 알았고, 그건 단순한 성격 문제라고 생각했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더 철저해져야 한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모든 것의 이유를 들었다. 진단명 하나에 너무 많은 퍼즐이 맞춰지는 경험. 이 글은 그 경험의 기록이다.

1. 처음으로 이상하다고 느낀 날 - ADHD를 의심하게 된 계기
🛤️ 그날도 기차를 놓쳤다
2024년 여름, 다이빙 동호회와 울릉도 여행을 가던 날이었다. 하필 그 날은 나의 팀 마지막 출근일이기도했다. 치워도, 치워도, 치워치지않는 자리 정리에 정신이 없었고, 결국 기차 시간이 촉박해져 3년간 함께한 팀원들에게 인사도 못 했으며, 끝끝내 유일한 포항행 SRT마저 놓쳐버렸다. 대전까지 이동해 겨우 KTX를 타긴 했지만, ‘복합열차’ 개념을 몰라서 호남으로 갈 뻔했고, 그 와중에 성심당 빵까지 놓고 내렸다.

“소연님 완전 ADHD인데” - 장난처럼 던진 누구가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내가 대화 중 갑자기 다른 말을 한다거나, 방금 했던 말을 꼭 다시 반복하게끔 되묻는단다. 특히 친하게 지내던 OO님이 가장 흥분하며 말했다. “어쩐지 이상하다 생각했어!” - 내가 ADHD 환자임이 기정사실 마냥 확실시 되고 있었다. 😅

🔄 놓치고 잊고 잃어버리는 나의 루틴
나도 안다. 매번 놓치고, 기억하지 못하고, 정리가 잘 안 되던 수많은 순간들. 난 첫인상으로 철두철미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내 친구들은 내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안다. 난 자주 지각하며, 자주 잊어버리고, 또 자주 잃어버린다. 길치가 아닌데도 잘못 된 길에 들고, 비행기는 3번쯤 놓쳤으며, 기차를 놓친 횟수는 셀 수도 없다. 물을 따를 땐 항상 흘리며, 이미 산 물건을 몇 번이고 또 사고,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못한다. 무엇이든 간에 적어놓지 않으면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도 기억하지 못한다. 이건 단순한 건망증이 아니라, 내 일상 자체의 반복 구조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 모든 게 당연해졌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라는 체념 같은 것.

🕳 그래서 나는 더 꼼꼼했다
많은 것을 놓치기 때문에 나는 업무 중엔 최대한 많은 것을 기록하고 메모하며, 사소한 것까지 검토한다. 그 모습 덕택에 날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꼼꼼하다는 착각을 한다. 물론 일상생활 중에는 애로사항이 많지만 업무 중에는 오히려 ‘꼼꼼하다’는 피드백까지 받으니, 내 단점은 보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그날 울릉도에서 들었던 한 마디 이후,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게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진짜 문제일 수도 있는 걸까?’ 내가 그동안 ‘개성’이라며 넘겨온 수많은 행동들이 사실은 누군가에겐 ‘증상’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렇게, 나는 내 삶을 조금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건 사소한 계기였지만,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의심이었고, 동시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2. 검사 과정 - ADHD는 어떻게 진단받을까?
🩺 문진 & 상담
의사 선생님의 대면 문진/상담으로는 너무나도 가볍게(?) ‘전형적인 ADHD’라는 소견을 받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 본격적인 검사는 이 때부터 시작이다. 무려 두시간 가까이 머리에 뭘 쓰고 뇌파 검사, IQ 테스트, 집중력 테스트를 봤다. ADHD 검사가 이렇게 과학적이고 체계적일 줄 몰랐다. 정신과는 내 생각보다 하이테크했다(!)

🧠 뇌파검사 (EEG, Electroencephalography)
ADHD의 뇌의 전기적 활동 패턴은 일반인과 다르기 때문에, ADHD 특유의 신경생리학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한다. ADHD 환자들은 Theta 파와 Beta 파의 비율을 의미하는 TBR이 일반적으로 높은편인데, 이는 멍함과 집중력 저하를 의미하며, 뇌의 각성 수준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나는 이 뇌파검사에서 꽤 독특하게 나왔다. 여기에는 두가지에 소견이 있다. 첫번째는 내가 과잉형 ADHD라는 것. 일단 ADHD 판별에 가장 중요한 지표인 TBR 수치가 하위 5%가 나왔다. 이는 ADHD 양상과는 반대되는 패턴으로, 되려 내가 너무 지나친 각성 상태라고 했다. 특히 나는 고주파대역(Beta, High Beta, Gamma)가 다소 비정상적으로 활성화 되어있었는데, 이 또한 과잉 각성 상태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나의 이런 극단적인 양상이 감각 자극 처리의 불균형 때문이라는 것. 예컨대 청각 자극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떨어지기에, 이를 시각적 집중력으로 과보완하면서 전체적인 뇌파의 방향성이 왜곡된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뇌가 부족한 자원을 보완하기 위해 다른 영역을 과도하게 동원하게 되면서, 각종 수치들이 비정상적으로 하위 5% 혹은 상위 5%에 치중된 것이다.

🧮 IQ 테스트 (Raven’s SPM, 유추능력 중심)
집중력보단 지능의 문제일 수 있으므로 지능 검사 혹은 IQ 테스트를 같이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이 검사에선 최고 수치인 ‘140 이상’이 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이걸 특히 주목하셨는데, 학창 시절이나 사회생활에선 잘 해왔지만 생활 속 반복되는 실수가 계속되었다는 점 자체가 고기능 ADHD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양상이라고 했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못 해도 벼락치기로 충분히 높은 성적을 냈고,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가지는데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지능이 높을 수록 발견이 늦게 된다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인사이트도 있었는데, 그래서 아마 나의 경우에도 성인이 되어서 ADHD가 생겼다기보다는, 어린 시절에 발견되었어야할 ADHD가 높은 지능에 가려져 뒤늦게 발견 된 케이스일 것이라고 의견을 주셨다.

🎯 집중력 테스트 (CAT)
ADHD를 판별하는 가장 중요한 테스트. 반응 속도나 오류율, 일관성 등을 체크하며 지속적 주의 집중 능력, 실수 빈도, 반응 일관성 등을 검증한다. 계속해서 변화되는 규칙을 찾아낸다거나, 특정 숫자가 나올 때마다 화면을 클릭하거나, 특정 소리가 나오면 화면을 클릭한다.

여기서도 뇌파검사와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결과가 나왔는데, 시각 집중력(Visual Span)에서는 상위 1%, 청각 집중력(Auditory CPT)에서는 하위 1%였다. 이 극단적인 양상을 통해 나는 단순히 집중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각 처리 능력의 불균형이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각 자극에 대한 정보 처리가 지연되거나 누락되기 때문에, 나는 시각 정보에 더욱 의존하게 되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시각 자극 관련 뇌 영역이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동시에 청각 자극에 대해선 점점 더 무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3. 검사 결과 - 진단명 하나에 맞춰진 퍼즐들
💥 [ADHD] 나는 멈추지 못 하는 ‘과잉 인간’이다.
나는 ADHD하면 ‘산만한 아이’정도를 떠올렸다. 그래서 내 얘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잘 깨어 있고, 오히려 과도하게 집중하고, 멈추지 못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니 ‘집중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나와 맞지 않다고 여겨왔다.
히지만 나의 경우엔 ‘하이퍼포커스(hyper-focus)’와 ‘과잉계획’, ‘기록 강박’, ‘감정 반응의 민감성’ 같은 특성이 더 두드러졌다고 했다. 정신없이 일을 몰아서 처리하고, 하루 12시간을 넘게 일에 몰두하고, 머릿속에 열 개의 일을 동시에 떠올리고, 쉬고 있을 때도 조용히 쉴 수 없었다. 실제로 나는 주어진 업무가 많을수록 오히려 성과가 좋았다. 동시에 프로젝트를 세네 개 진행할 땐 집중력이 올라갔고, 일이 줄어들면 무기력해지며 주의가 흐트러졌다. 이건 ADHD 환자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과잉동기-탈진 루틴’이라고 한다. 몰아치듯 집중했다가 갑자기 방전되는 구조다. 그러니까 나는 가만히 못 있는 사람이 아니라,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 [APD] 소리는 들리는데, 뇌에는 닿지 않는다
사실 ADHD 진단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건, 청각 처리 능력에 대한 결과였다. 뇌파 검사와 집중력 테스트 모두 청각 자극 반응에서 유난히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하위 1%의 청각 정보 처리 능력. 뇌파 지수로도 청각 정보 전달 속도가 기준치의 절반 수준이었고, 그 마저도 인지력이 35%밖에 안 되었다.
내가 겪는 청각 관련 특징들
- 소음이 섞이면 대화 내용이 사라진다
- 말을 ‘다시’ 들어야 한다
- 가끔은 말은 들리는데, 의미가 뇌에 닿지 않는다
- 자막이 없으면 영화를 보지 못 한다.
실제로 시끄러운 공간에선 대화 내용을 거의 놓친다. 누군가 말을 하면, 이해하기까지 몇 초가 더 걸린다. 분명히 방금 들은 말인데도 ‘그게 무슨 말이지?’ 하며 머릿속을 맴돌다가 결국 다시 묻게 된다. 특히 말 전체의 문맥을 한 번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보가 왜곡되거나 통째로 사라지기도 한다. 나는 그동안 이걸 산만함이나 건망증으로 착각해왔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난 ‘듣는 것’보다 ‘보는 것’에 의존하게 됐다. 예컨대 자막 없는 영화는 사실상 못 보기 때문에 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건 나의 ‘성격’이 아니라 뇌의 ‘처리 구조’ 문제였다. 이것이 바로 청각 처리 장애(APD, Auditory Processing Disorder)였다. 청력이 나쁜 것도, 귀가 아픈 것도 아니다. 소리는 들리지만, 그 안의 ‘정보’가 뇌에 닿지 않는 것.

🎯 [감각불균형] 무지성 몰빵 스탯의 기행 빌드
나는 청각 정보 처리능력에서 하위 1%가 나왔지만, 시각 정보 처리 능력에서는 상위 1%가 나왔다. 한쪽 감각의 결핍을, 다른 감각이 ‘과하게’ 보완하고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 나는 청각 정보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듣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 누가 방금 한 말을 다시 물어보게 되는 이유, 대화 중 자주 주제를 놓치는 이유는 다 여기에 있었다. 반면, 시각 자극에는 비정상적으로 민감하다. 뭔가를 보면 바로 파악하고, 기억에 잘 남는다. 숫자나 글자의 배열을 시각적으로 기억하는 능력은 비정상적으로(?) 높다. 실제로 나는 머릿속에 사진으로 저장하는 것처럼 특정한 것들을 굉장히 잘 기억한다. 이를테면 카드뒤집기 같은 거.

4. 되돌아보며 - 나는 나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 결핍을 덮은 능력 - 단점 덕에 발전한 장점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매일 아침 할 일을 적었고, 회의 중에도 요점을 메모했다. 사람들은 날 보고 ‘정리 잘한다’, ‘디테일하다’고 했지만, 나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잊어버리는 게 너무 많아서 그랬다. 메모, 기록, 정리, 문서화, 캘린더 관리 — 그러니까 나의 방식이라기보단 생존 그 자체였다. 그 시스템 덕분에 ‘꼼꼼한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었고, 나도 사실은 그렇게 믿어왔다.

🎭 결핍을 가린 가면 - 고지능이라는 외피
수업 내용이 전혀 뇌에 박히지 않고 있었지만, 성적이 좋으면 아무도 그 사실을 발견하지 못한다. IQ가 높거나 성과가 뛰어난 사람일수록, 이런 문제는 더 늦게 드러난다. 주변 사람들은 ‘잘하는데 뭐가 문제야’라고 하고, 본인도 ‘내가 문제인 줄 몰라서’ 방치하게 된다. 능력이 아니라, 결핍을 몰라서 생기는 문제. 나도 그랬다. 나 뿐 아니라, 성인 ADHD를 진단받은 대부분의 사람이 지능 때문에 어릴 적에 발견을 못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 결핍을 정체화한 오해 -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착각
나는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늘 피곤하고, 대화 중 자주 놓치고, 정리와 메모에 집착하는 것도 그냥 내 성격이라 믿었다. 예민하고 집중에 기복이 있는 건 그냥 “나는 그런 타입”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원래의 나’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진 나’였다는 걸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그건 내가 선택한 성격이 아니라, 적응을 위한 전략이었다.

🏆 결핍을 감춘 성과 - 버티는 사람이 유능해 보이는 사회
우리는 늘 ‘버텨야 했다’. 그걸 ‘능력’이라 착각했고, 나 또한 남들보다 노력해야 가능한 상태를 ‘내 기본값’이라 믿었다. 모두가 각기의 힘든 상황 속에서도 노력을 하고 살아가는거라 믿었다. 성과가 결핍을 감췄고, 그 결핍은 너무 오랫동안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이제 와서야 그 모든 ‘성과’는 나를 괴롭히던 결핍 위에 세워진 허약한 탑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5. 진단 그 이후 - 달라진 것들
🔊 세상이 조용해지고,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약을 먹은 첫날, 정말 기이한 경험을 했다. 대화 중 상대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일 줄 몰랐다. 이전에는 매번 대화가 ‘들리는 듯 말듯’ 흘러가곤 했는데, 이제는 단어가 명확히 박히고, ‘생각의 소리’와 ‘외부의 소리’가 서로 뒤섞이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기분에 펑펑 울었다. 이렇게 잘 들리는 거였다니, 이제까지 내가 정말 못 듣고 있었다니,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나의 불편함을 참아주고 있었다니, 그런 복잡한 마음 속에 정말이지 눈물만 나왔다.
약은 만능이 아니다. 잠시동안 집중이 좋아지는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그 몇 시간 동안의 평온함은, 내가 평생 몰랐던 세계였다. ‘내게 맞는 리듬을 찾고 싶다’ 찾기 위해, 약은 그 리듬을 찾는 ‘보청기’ 같은 역할인 것이다.

📖 진단은 낙인이 아니라, 나에 대한 설명서
진단을 받았다는 건 어떤 면에선 나를 규정짓는 일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해방시키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늘 “왜 나는 이럴까?”라는 질문에 붙잡혀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 “내가 부족해서”라고 답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이유가 있다. 구조가 있다. 설명이 있다. 나는 그냥 그런 구조의 뇌를 가진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 사실은 나를 약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다정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나를 다그치지 않는다. 못했다는 이유로, 실수했다는 이유로, 끝까지 못 갔다는 이유로 나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나는 나를 이해하고 있고, 그 이해는 삶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 진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제는 과거의 내가 이해된다. 무리하게 몰아붙이고,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책으로 무너졌던 그 많은 순간들이. 나는 부족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구조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 구조를 아는 것만으로도 삶은 훨씬 다정해질 수 있다.

🤝 나의 부족함은 타인을 이해하는 문이 되었다
진단 이후, 내가 제일 크게 바뀐 건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다. 예전엔 답답하게 느껴졌던 사람들—매번 회의만 요청하고 슬랙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던 개발자, 문서를 읽으면 되는데 꼭 설명해달라던 누군가—그들을 이제는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제는 생각한다. ‘혹시 그 사람도 나처럼 정보처리에 있어 어떤 감각의 편향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나의 감각구조를 알게 된 이후, 타인의 행동도 더는 ‘이상함’이 아니라 ‘다름’으로 보인다. 진단은 나만을 위한 것도, 나만 바꾸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내 태도도 함께 바꿨다.

6. 글을 정리하며 - 나는 나를 어떻게 대하게 되었는가?
💡 자책하며 살아오던 나의 진짜 사용 설명서
나는 항상 대화를 놓쳤고, 사람들은 내가 집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내 뇌가 듣는 걸 잘 못하는 구조였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모른 채, 나는 정말 너무 오래 멀쩡한 척을 하며 살아왔다. 나는 게으르다고 생각했고, 의지가 약하다고 자책했고, 왜 자꾸 마무리를 못 하냐며 나를 고장난 물건처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망가진 게 아니라, 설명서를 몰랐던 거다.
진단은 낙인이 아니라, 나에 대한 설명서다. 그걸 알게 된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설명서가 있다는 건, 이제 나를 고치려 애쓰는 대신, 나를 이해하고 다룰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그건 꽤 괜찮은 일이다.
지금도 여전히 지각하고, 산만하고, 언젠간 이미 산 물건을 또 사는 날도 다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그 답은, 나를 다정하게 대하는 첫걸음이 되었다. 예전에는 실수할 때마다 나를 다그쳤지만, 지금은 포용할 수 있다. 그 작은 인정 하나가 일상을 다르게 만든다. 나는 나를 탓하는 대신, 관리할 수 있는 나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건 ‘실패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실수해도 괜찮은 나’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건, 설명서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태도다.

💬 그리고, 자책하고 있는 또 다른 당신에게
혹시 당신도 자꾸 산만하다는 말을 듣고, 이미 한 말을 또 묻는다고 핀잔을 듣고, 머릿속이 너무 산란해서 메모를 놓치고,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아 조급해지고 있다면. 그게 꼭 당신의 잘못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연 나이 서른 살이 되어서야 내 삶의 사용설명서를 받았다. 검사를 받는다고 갑자기 지각을 안 하게된다거나 안 하던 청소를 하는 등 인생이 뒤집히는 건 아니지만, 설명이 생긴다는 건 생각보다 큰 변화였다. 그 설명은 나를 바꿨고, 나의 관계를 바꿨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바꿨다. 나는 진단 이후 처음으로 나를 이해했고, 덕분에 타인을 덜 원망하게 되었다. 나도 몰랐던 나의 결핍을 알게 되자, 타인의 이상한 행동들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혹시 당신도 ‘나는 왜 이럴까’라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이래서 나는 안 돼’라는 말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면, 오래된 자책 속에 살아가고 있다면, 한 번쯤 사용설명서를 받아보길 바란다. 그건 나를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당신도 나처럼, 스스로를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하게 되길 바란다.
나 또한 지금이라도 받아들였기에, 이제 나는 그 설명서대로 살아보려 한다.
